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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단도박모임 100일잔치 소감문 본문
백일의 기적이 왔을까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아이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첫 아이를 임신하고 모든것이 처음이고 낯설어..무거워지는 몸도 힘들고,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도 사실 겁도 났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늘... 어떻게 아이를 순산 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힘든일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보니 , 낳는것이 아니라 키우는것이 훨씬 더 곤욕이었습니다.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나서는 배고프다고 울고, 소화가 안된다고 울고, 기저귀가 찝찝하다고 울고,
심심하다고 울고...그 갓난아이가 시도때도 없이 우는데 아이 낳는 고통은 순간이었지만,
키우는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힘이 들더군요.
친정에서 몸을 풀었지만 모두가 다 일을 나가고 아이와 혼자 남겨 지는 낮시간에는우는 아이를 안고 도대체 왜 우느냐고..
나도 힘들다며 앉아서 엉엉 울고 또 울었습니다.
잠을 제때 못자고 먹는것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극한의 고통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때 신생아를 키웠던 아이 엄마들이 그러더군요.
100일의 기적을 기다려라.100일의 기적이 올 것이다!100일정도가 되면 아이가 밤이든 새벽이든..
혹은 낮이든간에 4시간 이상 통잠을 자고 , 먹고 소화하는것도 연습이 되어 익숙해지니 엄마도
그때가 되면 먹는것도 자는것도 조금 수월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70일이 조금 넘어가니 제 입에서 ' 아휴.. 이제 좀 살겠다' 하며 한번 숨이 쉬어졌고
100일여 쯤이 다니 다시 한번 숨통이 틔였습니다. 정말 100일의 기적이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육아는 쉽지 않았습니다.그 뒤로 240일까지가 정말 또 한번의 고비였습니다.
100일까지 친정에서 도움을 받다가 집으로 돌아와 육아와 일을 시작했는데
밥을 앉아서 반찬을 놓고 먹은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싱크대에 서서 마시기가 일수였고,임신 때 얻은 임신성 당뇨로 내당능판정을 받아 혈당 조절이 필요했었지만
간단히 배를 채우기 위해 빵집 하는 지인이 주신 빵과 우유가 거의 주식이었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사람 답게 잠을 자고 먹을 수 있게 된것은 아이가 돌이 한참이 지나서였던것 같습니다.
정선생의 단도박이 오늘이 100일이라고 합니다.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이 희미하게 파노라마 처럼 흘러 지나갑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빚과 도박, 정선생의 반복되는 거짓말에 대한 배신감들로 기억을 자꾸 지우려 해서인지
사실 그동안의 일들이 또렷하게 기억이 다 나지가 않습니다.
산후에 오는 건망증도 한 몫 거든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조리원에서 신랑의 핸드폰을 통해 캐피탈에 2천만원 가까의 빚을 발견하고 뒷통수를 한번 맞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뒤에도 빚을 일부 갚아주는 과정에서 또 자꾸 빚이 만들어지는것을 확인했고
산후 우울증에 거짓과 배신감에 아이를 안고 더 많이 울었던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도박 빚인줄은 몰랐었습니다.
정선생이 결혼전부터 일부 빚이 있었기 때문에 그 빚의 연장선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100일 몸조리가 끝난 후에 집에 돌아왔을때에도.. 정선생은 늘 핸드폰에 미쳐 있었습니다.
하루는 정선생이 씻으러 들어가서 물소리가 들리는데급하게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샤워를 하면서도 핸드폰을 보고 있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때 도박 사실을 처음 알았던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만해도 미안하다 절대 안하겠다는 정선생의 말을 믿고, 빚을 빨리 갚아보겠다고 먹는것 입는것 모든 것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정선생이 좋아하던 차도 팔았습니다. 소비를 줄이고 고정지출을 어떻게든 줄여야 아이가 한살이라도 더 어릴때 ...아무것도 모를때...빨리 빚을 청산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빚을 갚아가는 속도보다 자꾸만 어디서 빚이 생겨 나오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습니다.결국 제 손에서는 감당이 힘들어 시댁에 말씀을 드리게 되었고, 시댁에서 일부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관리비 낼 돈이 없고 아이 이유식 장 볼 돈이 없어 작은형님께 말씀드려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도 했었습니다..하지만 정선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도 수차례늘 반복되는 거짓말에 저도 시댁 식구들도 지쳐갔습니다.그러던 작년 11월.절대 안한다. 이제 안한다. 나를 왜 그렇게 못믿냐?자꾸만 되묻는 제게 오히려 화를 버럭 내던 정선생에게 내가 다 알아야 뭐든 같이 해결을 할것이 아니냐..모든것을 솔직하게 털어 놓아라.. 울고 불고.. 메달려 이야기 했더니..그제서야 1억의 넘는 빚이 더 숨겨져 있었던것을 이야기 하더군요.빚 2~3천에 갓난 애를 안고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울고 불고 했었는데억단위가 넘어 가는 빚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살아 온것이 허탈하고 허망해서 웃음이 났습니다.그런데 그것이 또 솔직한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한달 뒤인 작년 12월 . 정선생의 몰랐던 통장 계좌, 금액, 빚을 더 알게 되었고모든것을 털어 놓았다고 생각했던 11월 이후로도 도박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더 이상 희망이 없었습니다. 깜깜했습니다.그냥 모든것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었는지 바로 그날이 토요일이었습니다.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GA 진주모임에 전화를 하고.. 안가겠다는 정선생에게 윽박질러 저녁에 진주 모임에 끌고 나오게 된것이바로 우리의 1일이었습니다.정선생 19살, 제가 21살 처음 만났을때 이 사람이 이렇지는 않았었는데..지금 보니 눈도 멀고 귀도 멀고 마음까지 멀어 사람구실을 제대로 못하게 되었구나 싶더군요.
결혼 전에 제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우리가 살아 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몇배는 더 많고
아직 우리 둘 다 부족한 것이 많으니서로 잘 도와가며 서로를 키워가자 했었습니다.
문득 결혼 전에 제가 했던 그 말이 떠오르며 혹시 내가 이 사람을 이리 만들었나..
이렇게 잘못된 길로 키운것인가.. 싶은 죄책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정말 끝이 났다고 생각했던 토요일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기회를 주자 했던것이
바로 이 곳의 문을 두드린것이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뒤 돌아 걸어온 자국들을 서로 이야기 해보니 제가 그렇게 하루 하루 돈으로
압박을 줄때마다 정선생은 도박을 했었더군요. GA선생님들과 갬아넌 여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뒤 돌아보니저도 참 스스로를 힘들게 내 몰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입버릇처럼 빚을 어떻게 빨리 갚을것인가 빚빚.. 빚 이야기 뿐이었던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이제 조금 있으면 단도박 100일이 되어 가는데 지금까지
도박을 시작하고 이만큼 단도를 한적이 있느냐 물었더니 없었다 하더군요.
아이도 세상에 첫 숨을 쉬면서 숨 쉬는것도 낯설어 울고,
거봉 한알 크기의 위로 처음 먹어보는 것들을 소화하고 뱉어내고 하는것이 힘들어 울고 또 울어...
100일까지 그리 힘이 들었던 것처럼...
정선생의 단도박 100일도 마찬가지였을거라 생각됩니다.도박도 처음이었겠지만,
단도박도 처음이니 단도박 100일까지 혼자 참고 울고 한 날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들을 두돌까지 키워보니 100일의 기적도 필요하지만
돌의 기적, 두돌의 기적도 필요 하더군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스스로 재다짐하며 가족을 생각하고 항상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는
GA식구들 생각하며 100일까지 했던것과 같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
정선생도 선배 협심자님들처럼 잠재울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돌의 기적, 두 돌의 기적도 맞이 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두서 없이 써내려간 이야기를 경청해 주셔서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이 아직 어려 늘 어디든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고 소란을 많이 일으킵니다.
모든것이 처음이다 보니 늘 아이 눈에는 신기하고 궁금해서 그러하겠지요.
저희가 오게 됨으로 늘 소란속에서 모임진행을 하게 된 진주모임 식구들에게 죄송하고
또 늘 이쁘게 봐주셔서 감사드린다는 감사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모임 잔치나 연수때에도 늘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우는데 늘 너그럽게 이해해주신
선생님들과 여사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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