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잔치 소감문 - 2023.12.16.
오늘 아침도 해는 없고 어둑어둑 비가 내린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대학가 카페에 앉아 하얀 모니터만 응시하다 보니 창문 너머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2층 유리창 위로 바람에 몸을 싣고 빠르게 움직이는 회색의 옅은 구름들은 비를 연신 흩뿌리고 있었다.
바삐 오가는 차량들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옮긴다. 샛노란 우산을 쓴 사람, 그 옆으로 후드만 둘러쓴 사람. 뛰어가는 사람. 누군가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 전화를 하며 서 있는 사람. 저기 서둘러 걸어가는 아가씨는 뾰족구두를 신었다. 이 정도 비는 맞아도 괜찮다 생각하는지 두 청년은 장우산을 돌돌 말아 지팡이로 쓰며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고, 어떤 이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삼단 우산을 가방 안에 꺼내 활짝 펼친다. '내리는 비를 대하는 방법도 이렇게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나는 비가 내릴 때마다 법륜스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날씨를 보고 ‘오늘은 내가 짧은 옷이 입고 싶으니 따뜻해져라’ 할 수 있을까? ‘오늘은 눈을 보고 싶으니 눈을 내려라’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날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내리는 비를 멈추라 할 수 없다.
그저 비가 오면 내가 그 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날씨와 같은 존재다.
오늘 아침 내 눈에 비치는 사람들이 비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법들처럼 나는 날씨와 같은 일들과 날씨와 같은 대상에 적절히 대비하고 대응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누군가와 우산을 함께 펼칠 수도 있을 것이고, 비옷을 입거나 장화를 꺼내 신을 수도 있다. 또는 '이까짓 거! ' 마음속으로 외치며 내리는 비를 뚫고 그냥 걸어갈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다양한 방식으로 비의 세기에 따라, 나의 상황에 따라 내게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GA 모임 생활을 한 지 6년이 되어간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내리는 비에 각기 다른 반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를 날씨처럼 대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모임에 온 첫날 책받침의 주의사항을 읽으면서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던 문장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활을 조정하지 말 것. (먹고 자고 일어나는 것, 빚 갚아주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을 나는 다 했다. 빚도 빚을 내어 갚아 주었고, 먹고 자고 일어나는 것에도 사사건건 조정을 했다.
모임 생활을 하는 중에도 계속했다. 빚만 갚아주지 않았지 먹고 자고 일어나는 것에는 계속 입을 댔다.
갬아넌에서 듣고 보고 공부하니 해가 거듭될수록 점차 조정하는 횟수를 줄이는 결과는 얻었다. 세 번 참고 한 번, 다섯 번 참고 한 번, 그렇게 입을 대는 횟수를 줄여갔다. 그저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나는 여전히 입을 댄다. 자연에서 오는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당신은 말랐으니 다른 이들보다 음식을 더 신경 써서 먹어야 한다고, 영양제를 챙겨 먹었으면 한다고, 핸드폰을 들고 잠자리에 드는 것을 아이도 보고 배운다고.. 더 좋은 방향으로 삶을 바꿔보자고 또 그렇게 말을 한다.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것 아니겠냐며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씌워 남편의 생활을 조정한다. 남편을 조정하고 싶은 마음이 예전에는 뻘겋게 달아올랐던 '도박 금지' 였었다면, 지금은 '좋은 부모 되기, 건강 챙기기'라는 이름표만 바뀌었다. '상대가 고집이 센데, 그 센 고집을 꺾으려고.. 조정하려고 하는 나는 얼마나 더 고집이 센 걸까.' 여전히 반복되는 조정하고자 하는 습관적인 욕망은 나를 아직도 멀었다고 스스로 채찍질을 하게 한다.
얼마 전 코로나로 인하여 멈추었던 갬아넌 가족 소식지가 다시 발행되기 시작했다. 봉사자들께 감사하고 또 반가운 마음에 첫 장을 넘겼더니 포샤 넬슨의 아름다운 시, '다섯 장의 짧은 자서전'이 만나졌다. 이 시를 읽으며 반복되는 구덩이를 보고도 그대로 빠져들어가는 나를 만난다.
이 시는 선행 여사님의 잔치 소감문에서 처음 만났었다. 시를 낭독하는 여사님의 통찰이 마이크를 통해 강당을 채우고 고스란히 내 심장에도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렇게 내게 강한 여운을 남겼던 시다. '제목이 무엇일까' 다시 찾아보려다가 몇 해가 흘렀다. 아이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뽑아 든 무의식에 관련된 책에서 이 시를 다시 만났을 때는 얼른 노트에 옮겨 적어 화상 회합 때 여사님들과 함께 나누었던 추억이 있다.
이 시는 인간의 삶을 1장부터 5장까지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나는 시를 통해 도박중독에 대응하는 나, 재발할까 의심하고 불안해하던 나, 욱하고 터져 나오는 화라는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어하는 나, 부정적 사고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나, 자기 연민에 빠지는 나, 무기력에 빠지는 나, 남편을 조정하려고 하는 나를 본다. 다섯 단계로 나누어진 시 속의 나들을 보며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1장.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난 그곳에 빠졌다.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장.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난 그걸 못 본체했다.
난 다시 그곳에 빠졌다.
똑같은 장소에 또다시 빠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데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3장.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또다시 그곳에 빠졌다.
그건 이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난 비로소 눈을 떴다. 난 내가 어디 있는가를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난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왔다.
4장.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난 그 구덩이를 돌아서 지나갔다.
5장.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
2016년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는 기간부터 정 선생은 자꾸 빚을 만들어 오기 시작했다. 구덩이에 빠졌던 나는 정 선생을 탓하고 하늘을 탓하고 부모를 탓하며 구덩이를 더 깊이 파기 바빴다.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하늘을 원망하고 까마득한 현실에 절망하며 주저앉았다. 자기 연민에 빠져 남 탓 환경 탓만 하느라 벗어나고자 하는 힘을 낼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깊은 구덩이를 빚을 내어 빚을 갚아 주는 행위로 더 깊게 파고들어앉았다. 구덩이에 빠졌다는 사실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남편의 거짓말을 믿고 또 믿으며 나는 그저 오랜 시간 파고만 들었다. 그러다 모든 믿음이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나는 분노하고 있었고 아이는 울고 있었다. 정 선생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위를 보았다. 어떻게든 나와 아이만이라도 올라가야 했다.
감사하게도 내 앞에 GA와 갬아넌이라는 동아줄이 나타났다. 그 깊고 깊은 구덩이를 빠져나오기 위해 6년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모임 생활을 했다. 삶의 1순위로 GA 모임 생활을 올려놓았다. 가난과 불안은 나를 수차례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이미 죽어도 곱절은 죽었을 목숨이었다. 단도박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중요치 않았다.
혼자라면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정 선생과 우리 가족은 GA와 갬아넌에서 생활하며 협심자 선생님들과 여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힘을 길렀다.
시의 1장, 2장, 3장에서의 나는 자꾸만 깊은 구덩이에 빠진다. 하지만 3장에서의 ‘나’는 앞선 ‘나’들과 다르게 구덩이에 빠진 것이 남 탓이 아닌 나의 잘못임을 시인한다. 우리는 구덩이를 만났고 자꾸만 남 탓을 하며 빠져들었었다. 구덩이가 있음을 알고도 빠질 수밖에 없는 습관을 만들게 된 것도, 그런 환경을 바꾸려 하지 않았던 것도, 내가 그곳에 여전히 있었던 것도 사실 그건 스스로의 잘못이다.
도박이 병이라는 것을 알고, 그로 인하여 가족도 병을 앓고 있음을 알고, 나의 취약한 부분이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치유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잘못이다 .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도 더 아프게 만들었다면 그것 역시 잘못이다. 도박중독뿐 아니라 부정적 사고, 잘못된 행동 습관, 누군가를 조종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3장의 ‘나’는 앞선 ‘나’들 과 다르게 빠르게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날씨를 바꾸려 하지 않고 그 날씨에 대응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노력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성장시키는 힘을 키우기 위해 더 자주 모임에 참석했다. 그랬기에 구덩이에서 빠르게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모르고 지은 죄는 죄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항상 모든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꾸준히 듣고 배우며 성장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이다. 무지로 인해 잘못된 대응을 지속한다면 사실 그것은 죄가 된다.
하루하루에 살다가도 불현듯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예전에는 '우울하다'라는 감정만이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우울해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힘이 생겼다.
내가 감정을 느낀 것이지 그 감정이 내가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 때면 아주 작은 것들이지만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일들을 한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행동을 빠르게 취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환기를 시킨다.
좋은 글귀를 읽고 커피를 내려 마신다. 글을 쓴다. 자연을 보러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거울 앞에서 일부러 미소를 지어보고 억지로 웃음소리를 내서 웃기도 한다. 여사님들께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전화를 해서 수다도 떤다. 그리고 저녁에는 가까운 모임을 간다.
이제 내게는 4장과 5장으로 넘어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만이 남았다. 깊은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그리고 다른 길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5장에 이를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생각으로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긍정으로 채우고자 갬아넌에 참석하여 듣고 보고 배워야 한다.
지금 당장은 하늘에 먹구름이 덮여 있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힘들다는 감정에 휩싸이더라도 태양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위대한 힘의 온전한 사랑으로 GA와 갬아넌 안에서 우리가족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은 진주 모임의 1000회차 회합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진주 모임을 지켜주시고 지탱해 주신 진주 모임 식구들과 지금은 거제 모임에 계신 진주 가족들에게도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사를 전하며,
다시 한번 다가올 2024년 모임생활을 위하여 의지를 다져본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